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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정리 및 왜 경찰은 자살했을까?

오늘 인터넷에서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이 이슈입니다. 도대체 무슨 사건이길래 이렇게 인터넷에서 뜨겁게 이슈가 되는 것일까요?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정리


2000년 8월 10일 AM 02:00

전북 익산시 영등동 약촌오거리 인근에서 택시 운전사 유모씨가 자신이 몰던 택시의 운전석에서 흉기에 찔린 채 발견이 됩니다. 사건 발생 당시 유씨는 같은 택시회사 동료에게 다급한 목소리로 "약촌오거리에서 강도를 당했다"는 내용의 무전을 쳤습니다.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약촌오거리 살인사건


그러나 예리한 흉기로 가슴과 옆구리 등에 12차례 찔린 유씨는 근처 병원으로 이송되어 그낭 새벽 3시 20분경 숨을 거뒀습니다.


여기까지는 사실 일반적인 택시 살인사건과 비슷하지만..


그리고 수사를 맡았던 익산경찰서에서는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발생 사흘 뒤 인근 다방에서 오토바이 배달일을 하던 최모씨(당시 16살)을 범인으로 붙잡았습니다. 최모씨는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의 최초 목격자였습니다.



최씨는 경찰의 참고인 조사에서 "현장에서 남자 2명이 뛰어가는 모습을 봤다"라고 진술했지만 경찰은 그를 자꾸 범인으로 몰아갔습니다. 그리고 결국 경찰은 최씨가 택시 앞을 지나가다가 운전기사와 시비가 붙었고, 이 과정에서 오토바이 공구함에 있던 흉기로 유씨를 살해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당시 최씨가 입은 옷과 신발에서는 어떤 혈흔도 발견되지 않았지만 엉터리 재판에서는 정황증거와 진술만으로 유죄를 선고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최씨는 살인과 도로교통법 위반(무면허) 혐의로 구속기소, 2001년 2월 1일 재판부인 전주지법 군산지원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최초 목격자인 최씨를 명백한 증거도 없이 범인으로 몰고 간 셈이죠. 그리고 최씨는 그해 5월 광주고법 항소심에서 징역 10년으로 감형되자 상고를 취하하고 10년을 꼬박 복역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잘못을 바로 잡을 기회는 곧 다가왔었습니다.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발생 2년 8개월 뒤 2003년 군산경찰서에서는 그 사건의 진범이 따로 있다는 첩보를 접하게 되죠. 당시 용의자로 지목된 김모씨를 붙잡았고 "유흥비를 마련하기 위해 저질렀다"라는 진술까지 받아내게 됩니다. 또한 김모씨의 친구 임모씨로부터 "사건 당일 친구가 범행에 대해 말했으며 한동안 내 집에서 숨어 지냈다. 범행에 사용된 흉기도 봤다"라는 진술도 얻어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씨와 그의 친구가 진술을 번복, 구체적인 물증이 발견되지 않아 수사는 결국 흐지부지 됩니다. 경찰은 굴러온 복(?)을 그대로 걷어차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최씨는 2013년 재심을 청구했으며 광주고법에서는 최씨가 불법 체포·감금 등 가혹 행위를 당한 점, 새로운 증거가 확보된 점 등을 들어 재심을 결정했습니다.



재심이 진행 중인데 그 당시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을 담당했던 박 경위 경찰관이 숨진 채 발견되면서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지난 달 광주고법에서 열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재심에 증인으로 출석한 이후 주변에 "힘들다"라는 말을 자주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28일 0시 50분, 자택 드레스 룸에서 목 매 숨져있는 박 경위 경찰을 발견했습니다.


양심의 가책을 느낀 것일까?

숨지기 전 재심 3차 공판에서 증인으로 나선 박 경위는 다른 경찰관과 다르게 수사과정에서 일부 불법적인 행위가 있었다고 시인했습니다.



어떠한 불법적인 행위가 있었을까?

이제와서 누군가 속시원하게 그 당시의 일을 말해줄 사람은 없어보입니다. 목격자에서 범인으로 몰렸던 최씨의 말에 의하면 자백과 관련해서 


여관에서 몇 시간 동안 형사 5명 정도가 있었고 그 팀이 나를 계속 때렸다. 너무 맞고 잠을 안 재우니까 무서웠다.

흔히 말하는 몇 대 맞는다 수준이 아니었다. 죄송하다는 말이 나올때까지 맞았다.


라며 범행을 부인하면 폭행은 더욱 심해졌다고 고백했습니다.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담당 경찰관이 숨진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지만 최초 부실수사, 강압수사에 대한 의혹은 해소되어야 하며 만약 멀쩡한 사람이 감방에서 10년 넘게 있었다고 한다면 이번 사건은 동정론으로 쉽게 넘어가서는 안됩니다.